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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건국대 논술문제(인문사회I)(한글).hwp [156 KB] 2017 건국대 논술문제(인문사회I)(한글).hwp

※ [문제 1] : [가]에 제시된 장소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의 도표를 설명하시오. (401~ 600자) [40점]


※ [문제 2] : [가]와 [나]를 연계하여 [라]의 ‘나’에게 ‘원미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하시오. (801~1,000자) [60점]


[가] 최근 들어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인본주의 지리학이 등장하면서 ‘장소(場所, place)’ 개념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때 장소란 인간이 정서적인 끈을 형성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특정 장소는 다른 곳과 구별되게 만드는 특성인 장소성(場所性)을 지니고 있는데, 장소성이 있는 장소에 대해 사람이 지니는 정서적 유대를 장소애(場所愛)라고 한다.

 인본주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를 인간이 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서울, 뉴욕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보다 집, 고향과 같은 보편적인 장소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중 집을 가장 진정한 장소로 여겼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가족 관계를 통해 나의 집과 남의 집을 구별하는 것처럼 장소의 본질은 내적 경험에 있고, 따라서 장소의 의미는 장소를 경험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렐프는 장소와 장소를 경험하는 주체인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긍정적 유대감인 ‘장소의 정체성’에 주목했다.

 그는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진정성을 경험하는 장소가 점점 훼손되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장소 상실 현상을 ‘무장소성’이라 명명하며, 장소들이 획일화되어 가는 것과 상품화된 가짜 장소가 등장하는 것을 대표적인 현상으로 들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세계화로 인해 비슷한 생활 방식을 보이는 여러 국가의 도시들과 순수하게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디즈니랜드 같은 곳은 무장소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BS 수능특강 ‘독서’


[나] 자본주의 경제는 무한히 반복되는 확대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잉여를 온전히 생산에 재투자한다. 확대 재생산을 위한 자본주의의 운용 원리는 ‘수단-목적 합리성’으로, 이것은 최선의 수단을 통해 목적을 성취하고 이를 다시 수단 삼아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를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소모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성장을 위해 유용성과 효용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성(聖)의 세계, 즉 초월성이나 정서, 도덕을 몰아낸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인간은 유용한 사물이 되고, 인간의 관계도 사물의 관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용성에 대한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사물들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성장 체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조건을 뛰어넘어 초월적인 것과 소통하는 체험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끊임없이 권태와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노동을 하는 순간만은 상실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권태와 우울에 대한 방어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동하지 않는 순간에 자신도 하나의 유용한 사물로 축소되었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잃어버린 내면성을 되찾고 인간관계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생산적이고 무질서한 소비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즉 목적을 위해 잉여를 질서 정연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를 아무런 목적 없이 무질서하게 소비해야 한다. 바타유는 이를 ‘무조건적 소모’라고 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의 운용 원리가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서 ‘무조건적 소모’를 통해 잉여를 소모하는 것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결국 상실한 내면성과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조건적 소모’를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소모를 위해서 인간은 유용성을 벗어난 환몽(幻夢)의 세계를 특정의 시·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전략을 택한다.

 환몽의 세계는 유용성의 세계와 대립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조건을 뛰어넘어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세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환몽의 세계를 유용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예를 들어 파리의 아케이드는 황홀경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환몽의 세계의 선구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용성에 환몽의 세계를 덧칠하는 전략으로 내면성을 되살리지 못한다. 이것은 후에 백화점 등으로 발전해 나간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환몽은 유용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용성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확대 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소모를 위해 선택한 환몽의 세계마저 유용성을 창출하는 수단이 된다.

-EBS 수능특강 ‘국어’


[다]  다음 도표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의 기대를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표 안의 숫자는 응답자가 각 설문 항목에 대하여 기대의 정도(매우 기대, 조금 기대)를 선택한 비율을 나타낸다. 가령 첫 번째 막대의 ‘32.5’는 ‘주택 가치 상승’에 대해 ‘매우 기대’를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2007년 자료)


[도표]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의 기대





* 뉴타운 사업: 노후화된 불량 건물이 밀집되어 도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도심부의 효율적 발전을 위하여 공공시설을 정비하고 건축물을 개량하는 도시 재개발 사업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


[라] 내가 얼마나 구박덩이에 미운 오리새끼인가를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따위 너절한 게 아니라 원미동 시인(詩人)에 관한 것이니까. 내가 여러 가지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는 해도 솔직히 시가 뭣인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얼추 짐작하기로 그것은 달 밝은 밤이나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에서 눈을 착 내리깔고 멋진 말을 몇 마디 내뱉는 것이 아닐까 여기지만 원미동 시인이 하는 것을 보면 매양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원미동 시인 말고도 원미동 카수니 원미동 멋쟁이, 원미동 똑똑이 등이 있다. 행복사진관 엄 씨 아저씨가 원미동 카수인데 지난 번 ‘전국노래자랑’ 부천 대회에서 예선에도 못 들고 떨어졌다니 대단한 솜씨는 못 될 것이었다. 소라 엄마가 원미동 멋쟁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 보라색 매니큐어와 노랑머리는 소라 엄마뿐이니까. 원미동 똑똑이는, 부끄럽지만 우리 엄마이다. 부끄럽다는 것은 남의 일에 간섭이 심하고 걸핏하면 싸움질이나 해 대는 똑똑이는 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미동 시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 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가 밤중에 보면 꼭 몽달귀신 같다고 서울미용실 미용사 경자 언니가 맨 처음 그를 ‘몽달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자 언니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좀 경멸하듯이, 어린애 다루듯 함부로 하는 게 보통인데 까닭은 그가 약간 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어떻게 살짝 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만은 틀림없었다. 몽달 씨는 무궁화연립주택 3층에 살고 있었다. (중략)

 그런 몽달 씨에게 친구가 있다면 아마 내가 유일할 것이었다. 몽달 씨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니까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지만 우리는 엄연히 친구이다. 믿지 않겠지만 내게는 스물일곱짜리 남자 친구가 또 하나 있다. 우리 집 옆, 형제슈퍼의 김 반장이 바로 또 하나의 내 친구인데 그는 원미동 23통 5반의 반장으로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슈퍼 앞의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그와 함께 낄낄거리는 재미로 하루를 보내다시피 하였는데 요즘은 내가 의자에 앉아 있어도 전처럼 웃기는 소리를 해 주거나 쭈쭈바 따위를 건네주는 법 없이 다소 퉁명스러워졌다. 그 까닭도 나는 환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우리 집 셋째 딸 선옥이 언니가 지난달에 서울 이모 집으로 훌쩍 떠나 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김 반장이 선옥이 언니랑 좋아 지내는 것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일이지만 선옥이 언니 마음이 요새 좀 싱숭생숭하더니 기어이는 이모네가 하는 옷가게를 도와준다고 서울로 가 버렸다. 선옥이 언니는 얼굴이 아주 예뻤다. 남들 말대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지리 궁상인 우리 집에 두고 보기로는 아까운 편인데, 그 지지리 궁상이 지겨워 만날 뚱하던 언니였다. (중략) 큰언니는 경기도 양평으로 시집가서 농사꾼 아내가 되었으니 상관없지만 둘째 언니 이야기는 말하기가 부끄럽다. 둘째 언니는 처음에는 버스 안내양, 그다음에는 소시지 공장의 여공원, 그다음에는 다방에서 일하더니 돈 버는 일에 극성인 성격대로 지금은 구로동 어디에서 스물여섯 살의 처녀가 대폿집을 열고 있다. 언젠가 한번 가 봤더니 키가 멀대같이 큰 남자가 하나뿐인 방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채 잠들어 있고 언니는 그 옆에서 엎드려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지 않은가. 그만한 정도로도 나는 일이 되어가는 모양을 알 수 있었다.

(중략)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가게 옆구리의 샛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새 사내의 발길에 차여 버린 도망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김 반장이 만약을 위해 사내 주변의 맥주 박스를 방 안으로 져 나르면서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김 형, 김 형……. 도와주세요.”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빨간 셔츠의 사내가 다시 쓰러진 자의 등허리를 발로 꽉 찍어 눌렀다.

 “이 새끼, 아는 사이요? 그러면 당신도 한번 맛 좀 볼 텐가”

 맥주병을 거꾸로 쳐들고 빨간 셔츠가 소리 질렀다. 김 반장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려 버렸다.

 “무, 무슨 소리요? 난 몰라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서들 하시오.”

 그때 바닥에 쓰려져 버둥거리던 남자가 간신히 몸을 비틀고 일어섰다. 코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슬쩍 드러나 보였는데 세상에, 그는 몽달 씨임이 분명하였다. 그러고 보니 빛바랜 바지와 물들인 군용 점퍼 밑에 노상 껴입고 다니던 우중충한 남방셔츠가 틀림없는 몽달 씨였다.

(중략)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몽달 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응. 시를 읽으면서 누워 있었더니 금방 나았지.”

 금방은 무슨 금방. 열흘이나 되었는데. 또 한 번 나는 몽달 씨의 형편없는 정신 상태에 실망했다.

 “그날 밤에 난 여기에 앉아서 다 봤어요.”

 “무얼”

 “김 반장이 아저씨를 쫓아내는 것…….”

 순간 몽달 씨가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의 그 풀려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까맣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을 작정인지 괜스레 팔뚝에 엉겨 붙은 상처 딱지를 떼어 내려고 애쓰는 척했다. 나는 더욱 바싹 다가앉았다.

 “김 반장은 나쁜 사람이야. 그렇지요”

 몽달 씨가 팔뚝을 탁 치면서 “아니야”라고 응수했는데도 나는 계속 다그쳤다.

 “그렇지요? 맞죠”

 그래도 몽달 씨는 못 들은 척 팔뚝만 문지르고 있었다. 바보같이. 기억상실도 아니면서……. 나는 자꾸만 약이 올라 견딜 수 없는데도 몽달 씨는 마냥 딴전만 피우고 있었다.

 “슬픈 시가 있어. 들어 볼래”

 치, 누가 그따위 시를 듣고 싶어 할 줄 알고. 내가 입술을 비죽 내밀거나 말거나 몽달 씨는 기어이 시를 읊고 있었다……. (중략) 시는 전혀 슬픈 것 같지 않았는데도 난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였다. 바보같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바보 같은 몽달 씨…….

-양귀자, 「원미동 시인」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