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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 수시논술
이름 관리자
파일 2016 시립대 수시논술 기출문제 해설 & 예시답안.hwp [119.5 KB] 2016 시립대 수시논술 기출문제 해설 & 예시답안.hwp

2016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전형(인문계열) [논술고사 시간 13:00 ~ 15:00]

 

수험생 유의사항

1. 답안 작성 시 제목은 달지 말 것.

2. 수험번호, 성명 등 자신의 신상과 관련된 사항을 답안에 드러낼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함.

3. 답안 작성 시 필기구는 반드시 흑색펜을 사용할 것.(청색/적색펜 및 연필은 사용할 수 없음)

4. 문제지와 답안지의 문제번호가 일치하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불일치 시 0점 처리)

5. 답안의 글자 수는 띄어쓰기를 포함함.

6. 답안 수정은 원고지 교정부호를 사용하여야 함.(수정테이프는 사용할 수 없음)

7. 각 문항의 규정된 자수에서 200자를 초과하거나 200자 이상 부족할 시 감점 처리함.

[]

우리는 직관에 의해서 자명한 명제나 이성의 연역에 의해서 증명의 확실성이 성립되는 명제를 참이라고 여기기 위해 계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명제들은, 신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직접 계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지식 형성 방식에 따라 최대한의 확실성을 가진 지식으로 우리 마음속에 정착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신이 우리에게 그러한 명제들을 계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계시라는 사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실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결코 더 명증적일 수 없다.

계시라고 불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지식을 동요시키거나 파괴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명증하다고 여겨진 지식과 모순되는 것을 참이라고 여기도록 합리적으로 설복시킬 방법도 없다. 계시를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능력은 어떤 계시를 직관적 지식 정도만큼은 확실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를 지식보다 더 명증한 것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뚜렷하고 분명한 지식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우리는 결코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의 동일한 물체가 서로 다른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명제가, 신의 계시라는 권위에 의존하여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그 명제에 동의할 수 없다. 신이 그런 계시를 통해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신에 의해서 계시된 명제를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직관이나 연역에 의해 획득되는 지식보다 더 명증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관적 지식을 통해 하나의 동일한 물체가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어떤 명제가, 직관적으로 분명한 지식이나 연역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명제와 모순된다면 이를 신의계시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동의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그것에 동의한다면, 모든 지식의 토대와 명증성, 그리고 어떤 명제에 동의할 때 지켜야만 할 원칙이 전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명제가 자명한 명제보다 우위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과 거짓의 차이가 있을 여지가 없고, 무엇인가를 신뢰할 수 있거나 없음을 결정할 척도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지식이,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는 명제에 의해 밀려날 위험조차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닌 관념들 중 직접적 지각과 상반되는 명제를 신앙의 문제라고 강변하면서 납득시키려 하는 일은 쓸모없는 일이다. 그런 명제는 신앙이라는 명목뿐 아니라 다른 어떤 명목에 따른다 하더라도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

혹자는 귀족 계급이나 자본 계급의 말을 표준어로 정하려고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선에서 서울말로 치는 것도 서울 안 양반 계급의 말을 가리키는 것이요 결코 그 이하 계급의 말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은 오직 수도어 본위만이 아니요 귀족 계급 본위까지를 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봉건시대에 있어서는 양반 계급이 곧 지식 계급이라 그들의 말을 언어의 중심으로 삼는 데도 아무 이의가 없겠지만, 오늘에 와서는 귀족 계급 내지 자본 계급으로부터만 지식 계급이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의 말을 표준어의 본위로 삼는 데는 지금의 지식 계급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분분함을 면치 못한다. 모든 문화 사업이나 학술 연구도 지식 계급으로부터 지도되려니와 표준어의 제정도 그들의 손을 거치게 되는 터인즉 이는 상당한 영향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지식 계급의 말을 곧 표준어로 정하려고 할 수도 있다. 문화 또는 학술에 대한 그들의 유리한 지위로부터 그들의 말도 사회상 상당한 권위를 가지는 동시에, 표준어 제정에 대한 그들의 결정권으로부터 그들의 말이 중대시될 것은 도리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만일 일부 귀족 계급이나 자본 계급에서 나온 것을 뺀다면 지식 계급의 대다수는 중산 계급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식 계급의 말도 만일 귀족 계급이나 자본 계급의 말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결국 중산 계급의 말로 귀착될 뿐이다. 더구나 근대사회에 있어 정치상 경제상 내지 문화상 중산 계급의 세력은 결코 과소하게 보아 버릴 것이 아닌즉 따라서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중산 계급의 말을 표준어로 정하자는 일부의 논자까지 생기고 있으니 그것은 소위 언어상 계란주의. 계란주의는 무엇이냐 하면 머리와 끝이 빠르고 중간만 불룩한 계란과 같이 오직 중산을 중요시하여 그 이상과 이하를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산 계급의 세력이 거대하고 또는 그 계급으로부터 많은 지식 계급을 산출시키었다고 하더라도 어찌 귀족 계급이나 자본 계급의 말을 전연 무시해 버리고 그들의 말로써 곧 표준어를 정할 수야 있는가? 모든 방면에 있어 계란주의가 성공하기 어렵듯이 표준어에 있어서도 계란주의가 성공키는 어려울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다시 중산 이상 계급의 말을 표준어로 정하자는 절충안이 생길 수 있다. 이 절충안은 그들로 보아 확실히 하나의 명안(名案)으로서 오늘날 각국의 표준어는 많이 이 명안을 기초로 하여 제정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명안에도 노동 계급 내지 농민 계급의 말이 전혀 문제 외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어느 민족에 있어서든지 어느 지방에 있어서든지 그들이 가장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것도 그와 같이 기억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지식으로부터 거리가 먼 그들이라 말조차 전와(轉訛)*와 파격을 많이 포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중산 이상 계급의 말이라고 다소의 차는 있을망정 어찌 전와 또는 파격이 없을 수 있는가? 만일 정확한 발음과 어법을 표준으로 삼는다면 어째서 각 계급어를 통한 선발을 도모하려 하지 않는가? 더구나 지금 조선으로 말하면 동식물의 명사를 그들이 제일 많이 보관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말을 제외하고 어디서 동식물명을 찾으려는가? 또는 중산 이상 계급의 말이 가장 한문화한 데 반하여 고유한 조선어를 그들이 비교적 많이 보전해 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하여 그들의 말을 제외하여 그 잔존의 고유어를 배제코자 하는가? 우리 조선의 언어 연구가들은 언어 정화의 이상 아래 한문으로 된 말을 크게 기피하는 만큼 적어도 노농 계급어를 표준어의 중심으로 삼지 않아서는 안 된다. 노농 계급의 말로까지 시각을 넓히지 않는 한 자가당착에 떨어지고 만다고 그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 전와(轉訛):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굳어짐.

 

[]

“() 피아의 구분이 서로 형성됨으로써 은인과 원수가 생겨나고, 강약의 정도를 서로 살핌으로써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이 나타나며, 이해관계에 서로 매달림으로써 모이고 피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복잡하게 무리 지어 있어도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고, 외로이 홀로 있다고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으니, 이것은 형세의 논리입니다. 반면 천고의 먼 옛날로 세상을 설정해 두고, 수많은 사람들과 무관하게 자신을 초탈시키면, 피아의 구분이 형성되지 않고 강약의 정도가 비교되지 않으며, 이해관계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무리를 지어도 당파를 이루지 않고, 홀로 되어도 괴이한 짓을 하지 않으니, 이것은 도리의 논리입니다.

이 두 가지 논리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은 성()에 리()와 기()가 있는 것과 같으며, 이 두 가지 논리가 서로 어긋날 수 없는 것은 성을 논설하는 자들이 하나의 이론을 고집하여 다른 이론을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저와 그대의 생각이 합치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설명하는 입장이 서로 어긋나 있어서 틀어진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그대는 현달한 사람이어서 함께 교류하는 사람들이 모두 당대의 걸출한 호걸일 터이니, 형세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 격식을 깨고 강호로 직접 수레를 타고 찾아와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나와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은 충분히 들어온 얘기 외에 아직 못 들은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그대가 그동안 익히 들어온 얘기를 다시 드린다면, 그것은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서 강과 바다를 대접하는 꼴이겠으며, 그리고 그대가 그동안 익히 들어온 것과 다른 얘기를 듣는 것을 의문스러워한다면, 그것은 채소와 과일을 찾아 놓고는 맛이 쌀이나 고기와 다르다고 의문스러워하는 셈이니, 너무 잘못된 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듣기로 군자는 자신에게서 병으로 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선을 악이라고 인식하거나 악을 선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견해가 잘못된 병입니다. 선인 줄 알면서 따르질 못하고 악인 줄 알면서 피하지 못하는 것은 지기(志氣)가 모자란 병입니다. 선인 줄 알면서 따르지 못했을 때 따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대뜸 저건 분명 선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악인 줄 알면서도 피하지 못했을 때 피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대뜸 이건 분명 악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 씀이 비뚤어진 병입니다. 견해가 잘못된 병은 깨달으면 없앨 수 있고, 지기가 모자란 병도 힘써 노력하면 없앨 수 있지만, 병이 마음에 있는 것은 죽어야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왕업을 이룬 군주들이 버렸던 것이며, 성사(聖師)이신 공자께서 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견해와 지기에 대해서는 제가 감히 자신할 수 없지만, 마음 씀이 비뚤어진 병의 경우는 그 병에 들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고명하신 그대도 인정하시겠습니까?”

손님은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그대 말씀이 옳습니다.”

 

[]

빈곤 문화는 지역차나 도농차, 심지어는 민족적 차이까지도 초월하는 어떤 보편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런던, 글래스고, 파리, 멕시코 시에 거주하는 하층민의 삶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국가의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구조, 대인관계, 시대적 연원, 가치 체계, 소비 행태 그리고 공동체의식 등에서 눈에 띄는 유사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발견되는 빈곤의 보편적 특징이 거의 대부분 빈곤 문화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문화의 이식은 대체로 전쟁이나 평화적인 교류 등을 통해 강압적이거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기존 문화는 변이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현상이 긍정적 의미에서 기존 문화의 발전을 견인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특정 문화의 전파력이 상대적으로 우세할 경우 열세에 놓인 문화는 오히려 그것에 의해 압도되고 종국에는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우리 생활에 잠재적인 해악과 병폐를 야기하는 문화가 전파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문화의 주종을 이루는 것도 대체적인 경향이다.

빈곤 문화가 타문화에 비해 상대적 전파력이 크다는 주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의해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어떤 곳에 깨진 유리창 하나를 버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이 온통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는 이 이론은 빈곤 문화가 야기하는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병리 현상들의 전염성이 얼마나 큰지 잘 설명해 준다. 멕시코 시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점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빈곤 문화는 멕시코 시 전체 인구 중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하층민에게 적용된다. 빈곤 문화를 답습하는 인구의 특징은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이 낮으며, 청년층 비율이 높고 성인 남성 노동자보다 미성년 노동자와 부인 노동자가 더 많다는 데 있다. 또한 국가 체제에 제대로 통합되지 못하여 대도시 중심부에 거주하면서도 주류사회와 격리된 채 주변인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고, 실업, 불완전 고용, 저임금, 잡다한 미숙련 직업, 미성년 노동, 만성적 금전부족, 고리채 차용 등을 경험하는 비율도 높다. 이 외에도 빈곤 문화는 노동 윤리의 부재, 공공복지에의 의존, 주거지의 불확실함, 군거(群居), 사생활 관념의 부재, 약물 오·남용, 가정폭력, 조기 성경험, 권위에의 복종, 패배주의, 숙명론에 빠지는 경향 등의 특징이 있다.

방금 열거한 빈곤 문화의 특징과 병폐들은 자생적이라기보다 빈곤 문화의 이식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 특히 멕시코 시의 경우에는 세대 간에 그리고 지역 간에 빈곤 문화가 전이되는 면모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모들이 배태한 빈곤 문화가 가정 내 학습과정을 통해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든지, 빈곤 문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접경지역 하층민들이 암묵적 동조나 규범의 약화 등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빈곤 문화의 새 일원으로 포섭된다든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멕시코 시의 사례를 감안할 때, 일반적으로 빈곤 문화의 병리 현상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 문화의 재생산 메커니즘에서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문항 1

제시문 []의 주장을 250자 내외로 요약한 뒤, 주된 견해나 관점이 []와 다른 제시문을 []~[]에서 모두 찾아 []와 각각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시오. (600자 내외, 배점 30)

 

 

 

문항 2

1980420일 쿠바 정부는 미국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쿠바인들이 쿠바의 마리엘 항구에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19809월까지 약 125,000명의 쿠바인들이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으며 이들은 쿠바와 가장 가까운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에 도착하였다. 이때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을 마리엘리토라고 부른다. 마리엘리토는 대부분 미숙련 근로자들이었다. 마리엘리토가 마이애미 전체 인구와 경제활동인구(16세 이상의 인구 중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인구)에 미친 인구 통계적 영향은 매우 컸다. 마이애미의 경제활동인구는 단기간에 7%의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림 1>은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있기 전인 1979년과 이들의 유입을 겪은 후인 1981년의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을 보여준다. 그 당시 마이애미 흑인들은 노동시장에서 마리엘리토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림 2>는 같은 시기에 마리엘리토의 유입을 경험하지 않았던 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의 평균 흑인 실업률을 보여준다.

<그림 1><그림 2>를 근거로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추론하시오. , 그러한 추론을 위해 필요한 가정()을 반드시 포함하여 서술하시오. (400자 내외, 배점 20)

 



 

 

 

문항 3

<보기>에 나타난 A씨의 태도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어느 한 입장을 정한 뒤, []~[]의 모든 제시문을 활용하되 주된 견해나 관점이 자신의 입장과 같은 제시문의 논거는 지지하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제시문의 논거는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시오. (1,000자 내외, 배점 50)

 

<보기>

시리아 난민의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유럽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수용에 찬성하는 반면 체코와 같은 국가들은 수용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한 시위 현장에서 만난 헝가리 국적의 A씨는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이 불가한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 출제 의도

1. 논제 파악과 논증 구성 및 전개 능력 평가

쟁점이 들어 있는 글을 읽은 후 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주장, 입장, 견해 등을 세우고 정당화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2. 제시문 독해 및 분석 능력 평가

각 분야의 고전이나 여기에 견줄 만한 정평 있는 저술들에서 뽑은 글 또는 도표(그래프 포함) 등에 대한 독해 및 분석 능력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3. 제시문을 활용한 논거 제시 능력 평가

제시문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 견해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들을 제시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특히 각 제시문의 견해, 관점 등을 수용하거나 비판함으로써 이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로 활용하는 능력을 측정, 평가한다.

4. 조건에 맞는 서술 능력 평가

각 문항이 요구하는 내용을 주어진 조건에 맞게 서술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이와 더불어 표현의 정확성과 문장 구성력 등도 측정하고 평가한다.

 

. 각 제시문의 출처와 내용 소개

[] 이 제시문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인간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4185절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글이다. 로크는 신에 의해 주어진 계시와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지식 사이의 관계를 논한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란 신이 직접 인간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명증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크는 이런 사람들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지식은 직관이나 연역에 의해 확실성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이며, 계시도 이러한 지식의 조건을 만족하는 한에서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만약 계시라는 명목으로 명증한 지식과 모순되는 명제가 주어진다면, 우리 지식 체계를 구성하는 원칙에 따라 이를 받아들여서도 동의해서도 안 된다. 신이 우리에게 연역이나 직관 능력을 부여해준 것은, 신이 우리가 그것들에 의존하여 지식을 획득하기 원해서라고 로크는 생각한다. 그런데 신은 불합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성립된 확실한 지식이 성립되는 방식과는 달리 받아들여지는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 제시문은 19351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홍기문의 표준어 제정에 대하여라는 기사에서 발췌, 편집한 것이다. 이 제시문은 1930년대 당시 표준어를 제정함에 있어서 특정 계급의 말을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견해를 비판하고 농민, 노동자의 말에까지 그 시각을 넓히어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가운데 표준어를 제정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동식물의 이름을 비롯하여 고유한 우리말을 가장 많이 보전하고 있는 농민, 노동자의 말까지 포함하여 표준어를 제정하는 것이 중산층 혹은 중산층 이상의 말을 표준어로 삼고자 하는 것보다 더 이상적임을 주장한다.

[] 이 제시문은 조선시대 문인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응객(應客)이라는 글이다. 저자는 앞부분에서 형세의 논리도리의 논리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 두 가지 태도 모두에 대해서 긍정하면서도 자신의 형세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견해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나아가 그 견해가 옳다고 여기면서도 극구 거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극복해야 할 마음의 병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이 제시문은 빈곤 문화 담론의 시발점이 된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산체스네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 서문을 재구성한 글이다. 빈곤 문화론은 빈곤 발생의 원인을 사회 구조나 조건에서 찾기보다 나태, 무지, 일탈, 불량한 행실 등 개인의 병리적 차원에서 찾는 사회학 이론 중 하나이다. 빈곤 문화론은 빈민들의 다양한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병폐들을 열거하고, 이러한 해악들이 특수한 상황과 맥락들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제시문 []는 그러한 특성들 중 특히 세대 간, 지역 간에 전이되는 빈곤 문화의 확산적 속성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빈곤 문화는 개인 차원에서만 답습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계승되고, 나아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속성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시공간적으로 재생산되는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빈곤 문화와의 접촉 자체를 막는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을 제시문 []는 강조하고 있다.

 

. 문항 설명

문항 1제시문 []의 주장을 250자 내외로 요약한 뒤, 주된 견해나 관점이 []와 다른 제시문을 []~[]에서 모두 찾아 []와 각각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시오. (600자 내외, 배점 30)

이 문항은 제시문의 요약 능력, 제시문들의 주된 견해나 관점의 차이를 파악하여 서술하는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 문항에서는 우선 제시문 []의 내용을 주된 견해나 관점을 중심으로 적절한 분량으로 요약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제시문 []와 주된 견해나 관점이 다른 제시문들을 모두 선택하여 []와 다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제시문 []~[]는 모두 포용()’배제라는 상반되는 두 개념 가운데 어느 한 편을 옹호하는 것을 주된 견해로 하고 있다. 우리 외부의 낯설고 이질적인 타자를 우리 내부로 수용하느냐 배척하느냐의 문제, 간단히 말하면 포함의 논리배제의 논리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제시문들을 분류하고 비교하여야 한다.

1. []의 내용 요약

우리는 직관에 의해 자명하거나 연역으로 확실성이 성립되는 명제들만 지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계시한 명제는 우리의 지식과 부합하는 정도로만 확실하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지식보다 더 명증적인 것이라고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게다가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는 계시의 경우는 직관이나 연역으로 성립되는 지식보다 더 확실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지식의 토대와 명증성, 그리고 가치의 척도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는 지식과 모순되는 명제를 신의 계시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2. 제시문 []와 주된 견해나 관점이 다른 제시문은 [][]이다. []는 직관과 연역에 의해 명증성이 보장되는 인간의 인식 영역에 신앙의 영역인 신의 계시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배제의 논리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에서 포용의 논리를 구현하는 논거가 각각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의 논거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2-1. 제시문 []의 관점이 []와 다른 이유

제시문 []는 농민이나 노동자의 말이 갖는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귀족계급, 중산층의 언어만으로 표준어의 기초로 삼아서는 안 되며 농민, 노동자의 말까지 포함하여 표준어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준어의 제정에 농민, 노동자의 말을 배제하기보다는 포함시킴으로써 그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이 글의 주장은 제시문 []에서 옹호하고 있는 배제의 논리가 아닌 포용의 논리를 담고 있다.

2-2. 제시문 []의 관점이 []와 다른 이유

제시문 []는 상대방의 견해에 귀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세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것에 대해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배제의 입장을 담고 있는 제시문 []와는 서로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샘 예시답안 대학해설 참조 작성

제시문 []는 인간의 인식 영역에 신의 계시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배제의 논리를 옹호한다. 우리는 직관에 의해 자명하거나 연역으로 확실성이 성립되는 명제들만 지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계시한 명제는 우리의 지식과 부합하는 정도로만 확실하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지식보다 더 명증적인 것이라고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게다가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는 계시의 경우는 직관이나 연역으로 성립되는 지식보다 더 확실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지식의 토대와 명증성, 그리고 가치의 척도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는 지식과 모순되는 명제를 신의 계시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런 제시문 []와 주된 견해나 관점이 다른 제시문은 [][]이다. 제시문 []는 농민이나 노동자의 말이 갖는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귀족계급, 중산층의 언어만으로 표준어의 기초로 삼아서는 안 되며 농민, 노동자의 말까지 포함하여 표준어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준어의 제정에 농민, 노동자의 말을 배제하기보다는 포함시킴으로써 그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포용의 논리 []에서 옹호하고 있는 배제의 논리와 대립된다.

제시문 []는 상대방의 견해에 귀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세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것에 대해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는 점에서 명증성을 기준으로 신의 계시를 배척하는 []의 주창과 배치된다.

 

문항 2<그림 1><그림 2>를 근거로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추론하시오. , 그러한 추론을 위해 필요한 가정()을 반드시 포함하여 서술하시오. (400자 내외, 배점 20)

이 문항은 도표와 그림을 이해하고, 이를 주어진 조건에 맞게 기술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1. 개요

특히, 본 문항은 어떤 사건이 경제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하여 . ) 사건 발생 전후의 상황과, .. )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통제집단(control group)의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분석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항의 내용은 1980년 실제로 발생하였던 쿠바인들의 미국 플로리다 주의 유입이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2. 해설

문항에 제시된 <그림 1><그림 2>를 보고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첫째, 마리엘리토의 유입을 경험한 마이애미와 이들의 유입을 겪지 않았던 비교 도시들(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1979년과 1981년 사이에 동일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했어야 한다. 특히, 흑인들과 마리엘리토 사이에 경쟁 관계에 있는 미숙련 노동시장에서 실업률의 추세(time trend)가 동일하였다는 가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외생적으로 발생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쿠바인들의 마이애미로의 유입이 마이애미와 비교 대상이 되는 도시들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적 원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가정은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쿠바 정부의 갑작스런 발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조치가 한시적으로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하기를 원하는 쿠바인들로서는 보트를 타고 마이애미로 가는 선택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두 번째 가정은 자동적으로 만족된 것으로 간주하여도 무방하기 때문에 본 문항에서 묻고 있는 추론을 위해 수험생이 반드시 서술해야 하는 가정은 첫 번째 가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첫 번째 가정은 마리엘리토의 유입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요인이 마이애미와 비교 도시들 사이에 동일한 것으로 가정한다는 의미로 대체될 수 있다. , <그림 1><그림 2>를 근거로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만을 올바르게 추론하기 위해서는 모든 다른 요인이 통제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 첫 번째 가정이 만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 아래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추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림 1>을 보면 마리엘리토의 유입 이전과 이후에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이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2% 미만의 상승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년 동안 흑인 실업률이 상승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그 가운데 하나의 이유가 마리엘리토의 유입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흑인 실업률에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미친 영향만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의 영향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위에서 설명한 첫 번째 가정을 적용하면 다른 요인들이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에 미친 영향을 식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이애미와 비교 대상이 되는 도시들에서 마이애미와 동일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가정하였으므로 1979년과 1981년 사이에 비교 도시에서 경험하였던 흑인 실업률의 변화가 바로 마리엘리토 유입의 영향을 제외한 다른 요인들의 영향이라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2>를 보면 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실업률이 그 기간 동안 2% 이상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그러므로 <그림 1>에서 1979년과 1981년 사이에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 상승분에서 <그림 2>의 동 기간 동안 비교 도시들의 흑인 실업률 상승분을 빼면 바로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에 미친 영향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흑인 실업률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을 하락시켰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이애미와 비교 도시들(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1979년과 1981년 사이에 동일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도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이애미는 인구의 대폭적 유입으로 경기가 훨씬 더 좋아졌다고 가정하거나 혹은 미국 정부에서 마이애미에만 마리엘리토의 유입과 상관없이 대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을 도입한 경우 <그림 1><그림 2>만을 근거로 위에서 설명한 방법만으로는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흑인 실업률에 미친 영향을 추론할 수 없다. 만일 수험생이 이러한 논리 전개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여 설명한 경우라면 정답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학 예시답안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마이애미와 마리엘리토의 유입을 경험하지 않았던 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의 1979년과 1981년 사이 흑인 실업률의 변화 추세가 동일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정은 마리엘리토의 유입을 제외하고는 마이애미와 비교 도시들의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동일하게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림 1><그림 2>를 보면 마이애미의 흑인 실업률이 동 기간 동안 2% 미만의 상승을 경험한 반면 비교 도시들은 2% 이상의 상승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도입한 가정을 적용하고 마이애미 흑인 실업률 변화분에서 비교 도시들 흑인 실업률 변화분을 빼면 마리엘리토 유입의 결과 마이애미의 흑인 실업률은 오히려 하락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 흑인 실업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마리엘리토의 유입이 마이애미 미숙련 노동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문항 3<보기>에 나타난 A씨의 태도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어느 한 입장을 정한 뒤, []~[]의 모든 제시문을 활용하되 주된 견해나 관점이 자신의 입장과 같은 제시문의 논거는 지지하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제시문의 논거는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시오. (1,000자 내외, 배점 50)

이 문항의 논술은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 여부에 대한 헝가리 국적의 한 시민 A씨의 태도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정하고, 이렇게 정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문을 활용하여 정당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1. 개요

<보기>는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 여부에 대한 A씨의 부정적인 태도를 제시한 글이다. 쟁점을 일반화하면 우리 밖의 타자를 우리 안으로 수용해야 하느냐 마느냐인데, 이를 상반되는 두 개념으로 표현하면 포함배제에 대한 입장을 정하라는 것이다.

포함 또는 포용의 입장을 옹호하는 제시문은 [][], 반면 배제의 입장을 지지하는 제시문은 [][]이다. 따라서 헝가리 국민 A씨의 태도가 배제의 관점을 취하므로, 이에 찬성하려면 [][]의 입장은 지지하고 [][]의 입장은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해야 한다. 반대로 헝가리 국민 A씨의 태도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의 입장은 지지하고 [][]의 입장은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런 얼개에 맞춰 답안을 논술하려면 무엇보다 각 제시문의 핵심 논거들을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는 문항 3의 요구에 적합한 논술문을 작성하기 위해 제시문의 논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소개한 것이다.

2. 지문의 논거 활용

1) A씨의 태도에 찬성하는 입장

[] 이 제시문은 직관에 의해 자명하거나 이성의 연역에 의해서 확실성이 보장된 명제만 우리의 지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신의 권위에 힘입어 주어진 계시의 경우, 이런 지식이 명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해주는 원칙을 지킬 경우에만 지식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도 그 명제가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나 연역에 의해서 참이라고 입증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식 체계를 형성하는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어떤 명제를 지식 안에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시문에서 논의된 지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사회에 이미 확립되어 있는 사회 체계와 가치관은 확고하고 분명한 것으로 헝가리 사회 구성원에게 여겨지기에, 외래적인 것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헝가리 사회 내 들어온다면,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 질서와 체계를 동요시키고 구성원들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기존 신념과가치 체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헝가리에 수용할 경우, 헝가리 사회가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의 척도와 질서를 흔들어 놓을 것이고 더 나아가 전복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시리아 난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완전히 포기하고 헝가리의 규범, 가치 체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헝가리 사회에 수용해서는 안 된다.

[] 이 제시문은 표준어를 제정함에 있어서 특정 계급의 말을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견해를 비판하고 농민, 노동자의 말에까지 그 시각을 넓히어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가운데 표준어를 제정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어가 모든 계급의 말을 바탕으로 하여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표준어가 갖는 언어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생각할 때 여전히 취사선택의 문제가 대두된다. 즉 표준어는 그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언어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언어의 사용을 이끌어가야 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에 따른 자국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악화될 것을 염려하여 난민의 유입을 반대하는 A씨 혹은 그 국가가 주장하는 배제의 논리는 옹호될 수 있다.

[] 이 제시문은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고, 나아가 그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옳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매사에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이상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지문에서 이를 실천해낸 인물로 왕업을 이룬 군주나 성인을 들고 있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 생활에서는 형세의 논리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또 보편적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형세의 논리에 따라 자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A씨의 태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

[] 이 제시문은 빈곤 문화의 다양한 병폐들을 열거한 후 그와 같은 부정적 특성들이 시공간적으로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빈곤 문화를 답습하는 자들과의 접촉 차단을 제안한다. 이런 측면에서 제시문 []는 난민 배제를 옹호하는 논거로 활용될 수 있다. 개별 난민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수많은 난민 중 누가 빈곤 문화의 보균자이고 누가 정착국 국민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큰 제척 대상인지 사전에 알기 어렵다면, 처음부터 난민 수용을 불허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함으로써 빈곤 문화의 확산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즉 빈곤 문화의 확산적 속성 그리고 난민에 관한 정보 제약을 감안했을 때, A씨가 빈곤 문화의 병폐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고 나아가 사회 안정과 통합, 질서를 도모해야 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난민 불허 주장을 펼치는 것은 합당한 판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 A씨의 태도에 반대하는 입장

[] 지식이란 직관과 연역이라는 이성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확실하지만, 신의 계시에 주어지는 명제는 이렇게 확실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이 제시문은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의 직관과 연역이 이 제시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명증한 지식을 확보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직관은 많은 경우 오류를 낳는다. 따라서 지식은 명증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확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지식이 신의 계시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의 규준들은 환경, 시간, 인구, 산업, 경제 구조 등의 다양한 조건들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이민자의 유입은 기존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질서와 규범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 체제와 국민의 삶을 개선시킬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출산율의 저하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난민들의 유입은 경제규모를 성장시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기존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윤리적 규범과 가치 체계 또한 타인들에 대한 배려와 새로운 가치의 수용을 통해 포용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시리아 난민은 헝가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수용을 반대할 수는 없다.

[] 이 제시문은 표준어를 제정하는 초기 단계에 있어 특정 계급의 말을 대상으로 삼기보다 모든 계급의 말을 대상으로 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어떤 계급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표준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난민의 자국 내 수용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록 그들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며, 난민의 수용 여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제시문은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고, 나아가 그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옳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기>A씨의 난민에 대한 태도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 A씨가 자국 사정을 앞세워 난민 수용에 절대 반대하는 것은 지문 []에서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귀를 닫아버리고 상대방의 견해를 거부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난민에 대한 A씨의 입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

[] 빈곤 문화 이론은 난민 배제 주장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첫째, 개별 난민의 사회 경제적지위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그가 하층민일 것이란 추정에 근거해 빈곤 문화의 담지자라 규정짓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둘째, 설령 해당 난민이 실제 빈곤 문화의 담지자라 할지라도 이들이 빈곤 문화의 병폐를 확산시키며 정착국가 국민을 오염시킬 것이라 단정 짓는다면 이 역시 논리적인 비약이다. 새로운 사회에 정착한 이후 빈곤 문화의 병폐를 자력으로 극복해 주류사회 내 모범적인 소수자 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고,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빈곤 문화의 세대 간, 지역 간 확산의 고리를 끊어 시공간적으로 빈곤 문화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난민이 가난한 이유를 나태, 무지, 불량한 행실 등에서만 찾아 그 개인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희생자 비난하기에 다름 아니다. 빈곤은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시각도 충분히 타당성을 가지며, 이런 시각에서 봤을 때 가난한 난민은 구조의 피해자라는 등식도 얼마든지 성립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결과, 즉 난민은 빈곤 문화의 병폐를 확산시키며 정착국가 국민을 오염시킬 것이란 추측만을 근거로 난민의 입국 자체를 불허하는 것은 기회균등의 원칙, 기본적 인간역량을 실현할 권리 등 보편적인 인권 정신에 위배되는 처사이다.

샘 예시답안 대학해설 참조 작성

[A씨의 태도에 찬성하는 입장]

<보기>는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 여부에 대한 A씨의 부정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우리 밖의 타자를 우리 안으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헝가리 국민 A씨의 태도는 정당하다.

타자의 무분별한 수용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원칙과 가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는 지식 체계를 형성하는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어떤 명제를 지식 안에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사회에 이미 확립되어 있는 사회 체계와 가치관은 확고하고 분명한 것으로 헝가리 사회 구성원에게 여겨지기에, 외래적인 것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헝가리 사회 내 들어온다면,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 질서와 체계를 동요시키고 구성원들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리아 난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완전히 포기하고 헝가리의 규범, 가치 체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헝가리 사회에 수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다양한 견해나 의견의 수렴이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서 표준어를 제정함에 있어서 특정 계급의 말이 아니라 농민, 노동자의 말에까지 그 시각을 넓힘으로써 사회통합과 언어적 다양성의 확보라는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표준어가 모든 계급의 말을 바탕으로 하여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표준어가 갖는 언어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생각할 때 표준어는 그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언어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언어의 사용을 이끌어가야 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에 따른 자국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악화될 것을 염려하여 난민의 유입을 반대하는 것은 타당성을 갖는다.

[]에서 강조한 것처럼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사에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이상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난민에 대한 수용 문제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시문 []는 빈곤 문화의 다양한 병폐들이 시공간적으로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빈곤 문화를 답습하는 자들과의 접촉 차단을 제안한다. 개별 난민에 대한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수많은 난민 중 누가 빈곤 문화의 보균자이고 누가 정착국 국민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큰 제척 대상인지 사전에 알기 어렵다면, 처음부터 난민 수용을 불허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함으로써 빈곤 문화의 확산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즉 빈곤 문화의 확산적 속성 그리고 난민에 관한 정보 제약을 감안했을 때, A씨가 빈곤 문화의 병폐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고 나아가 사회 안정과 통합, 질서를 도모해야 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난민 불허 주장을 펼치는 것은 합당한 판단이 될 수 있다.

[A씨의 태도에 반대하는 입장]

<보기>는 시리아 난민의 자국 내 수용 여부에 대한 A씨의 부정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우리 밖의 타자를 우리 안으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헝가리 국민 A씨의 태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난민의 수용은 다양성을 증진을 통한 사회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제시문 []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표준어 제정에서 특정 계급의 말이 아닌 모든 계급의 말을 수용하면 사회적 통합과 언어적 지평이 확장이라는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난민의 자국 내 수용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것은 난민이 그 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박탈하는 것이다.

난민의 수용은 단지 사회발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인식의 편협함을 극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고, 나아가 그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옳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난민의 수용은 새로운 문화적 자극을 통해 너무도 익숙해서 돌아보기 어려운 고정관념을 깨트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기존의 규칙이나 원리에 벗어난 대상의 수용은 사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에서 주장한 것처럼 지식은 이성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확실하지만, 신의 계시에 주어지는 명제는 이렇게 확실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인간의 직관과 연역이 명증한 지식을 확보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직관은 많은 경우 오류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의 이민자의 유입은 기존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질서와 규범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 체제와 국민의 삶을 개선시킬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출산율의 저하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난민들의 유입은 경제규모를 성장시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난민 배제는 다양성의 가치가 커지고 있는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에서 빈곤을 막기 위해 빈곤문화와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회 구조적 성격을 갖는 빈곤을 사회적 전염병으로 취급하여 빈곤한 사람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논리이다. 비록 난민들의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빈곤한 상태에서 수용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빈곤이 좌절과 포기의 핑계가 아니라 극복의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