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국어논술면접

(가) ‘표준’의 반대말은 ‘비표준’이고 ‘자율’의 반대말은 ‘타율’이다. 따라서 표준과 자율은 어휘 자체의 뜻만으로 보면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말이 사용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배타적 관계가 성립되기도 한다. 특히 각각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 주는 단어를 첨가하면 그 관계가 더 명확해지는데 ‘표준의 폭력’과 ‘자율의 혼란’이 그것이다. 표준을 정하고 그것을 강요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폭력이 된다. 반대로 표준을 포기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방치해 두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표준은 공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익숙한 말이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말이다. 그래도 이것을 말에 적용해 보면 쉽게 와 닿을 수 있는데 우리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표준어’가 대표적이다. 표준은 기준이나 목표를 뜻하는데 이것이 ‘말’에 덧붙게 되니 표준어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는 표준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표준어는 실재하는가? 표준어의 정의는 존재하지만 그 완벽한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되고 있으니 이런 사람을 찾으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지라도 이 사람의 말이 곧 표준어는 아니다. 표준어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불변의 존재인가? 오늘날의 표준어는 1933년에 기초가 마련되어 1988년에 확정되었다. 그 사이 표준어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개별 어휘와 표현에 대해서는 종종 규정이 바뀌기도 했으니 불변의 존재도 아니다.

이러한 표준어가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표준어 이외의 말은 비표준어가 되어 버린다. 국가기관이 표준어를 정해 공표했으나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규범 위반자’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표준어 때문에 방언이 천대를 받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어의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기도 하다.

표준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자율이 적절히 조정되고 통제되지 않으면 ‘내 맘대로 한다.’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 생산자가 표준을 무시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 위도상 별 차이가 없는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 다른 표준시를 쓴다면 막대한 불편과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표준을 말과 관련지어 살펴보았듯이 자율도 말과 관련지어 살펴보면 ‘표준어’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개인방언’이 될 수 있다. 방언은 지역적 조건, 연령, 성별, 계급 등의 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데 모든 화자는 이러한 조건에 따라 개인방언을 형성할 수 있고 실제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자율을 극단적으로 해석해 누군가 언어의 사회성, 역사성을 무시한 채 개인방언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원활히 소통할 수도 없을 것이며 모든 이들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언어공동체는 유지될 수도 없다.

언어 문제에 대해 표준과 자율을 적용하면 딜레마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언어공동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의 표준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표준을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지역, 연령, 성별, 계급 등에서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소외된다. 그렇다고 언어공동체 구성원의 자율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마다 제멋대로 말을 쓰게 되면 공동체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쁜 말’이 ‘좋은 말’을 밀어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고등학교『국어』,『사회』활용

(나) 컴퓨터는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되었다. 컴퓨터에서 문자를 구현하는 것은 필수적인데 운이 좋게도 영어는 26자의 알파벳만 있으면 된다. 알파벳은 대소문자를 구별하니 26의 알파벳, 0부터 9까지의 숫자, 그리고 몇 개의 특수부호만 처리하면 되어 문자 처리에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에서 여러 나라의 문자를 구현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영문자와 숫자는 물론이고, 한글, 한자를 모두 써야 하는 한국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영어권에 서는 128자면 모든 문자와 숫자, 특수기호 등을 표현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알파벳처럼 한글도 ‘ㅎㅏㄴㄱㅡㄹ’과 같이 풀어쓰면 그나마 상황은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이는 적절한 방식은 아니었다.

한국의 공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기존의 128자로는 도저히 한글과 한자를 구현할 수 없으니 더 많은 문자 표현이 가능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한글의 구성 원리에 맞게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으로 문자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컴퓨터상의 메모리 용량과 처리 능력은 기술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향상되니 가능한 한 한글의 특성에 맞게 많은 문자를 처리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나름대로 정착해 갈 무렵 정부 관계 당국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발표를 하게 된다. 2,350자의 한글만을 표준으로 정해 컴퓨터에서는 이 글자만을 쓰도록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컴퓨터에서 딱 2,350자 이외의 한글은 써서도 안 되고, 쓸 필요도 없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면 컴퓨터를 만드는 사람,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글꼴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고민이 없어져 무척이나 편리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관리해야 할 당국도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이 일이야말로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이 통곡할 일이었다. 사람의 말소리는 물론 자연의 모든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이 갑자기 정해진 소리만 적을 수 있는 문자가 된 것이다.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으로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고어(古語)는 고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