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제시문 [가]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내린 최후의 결정과 그 결정의 준거가 되는 ‘싸움의 예법’이 함축하는 바를 제시문 [나], [다], [라]를 참고하여 논하시오. (1000±100자, 60점)

[가] 그림자처럼 우리 주변을 맴도는 보이지 않는 부족이 있지. 그자들을 느껴봤나? 그들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갖고 꼭 우리네처럼 살아, 같은 종류의 무기와 연장을 쓰면서. 눈 위에 남겨진 그들의 자취가 가끔 눈에 띄고 그네들의 이글루가 보이기는 해도 보이지 않는 그자들을 절대 볼 수는 없다네. 죽을 때를 빼놓고는 보이지 않아, 그때는 보이기 시작하니까.

한번은 인간 여인이 보이지 않는 부족의 사나이와 결혼한 적이 있었지.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한 남편이었어. 사냥을 나가면 식량을 갖고 아내에게 돌아오고, 여느 부부처럼 얘기도 나눌 수 있었지. 그런데 아내는 자기와 결혼한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 내외가 모두 집에 있던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압도되어 남편이 앉아 있다고 여겨지는 곳을 칼로 찔렀지. 그러자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네. 아내의 눈앞에서 멋진 청년이 땅바닥에 고꾸라졌던 거야. 남편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고,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여인은 심장이 터지도록 울었지.

살해사건이 전해지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앙갚음을 위해 이글루에서 뛰쳐나왔지. 그들의 활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상대를 향해 화살이 활시위에서 당겨지는 게 보였지. 인간들은 그 자리에 무력하게 서 있었다네. 덤벼드는 자들이 보이지 않으니 뭘 해야 할지 어찌 싸워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던 게지.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싸움의 예법(code of honor)이란 게 있었다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상대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그들은 화살을 날리지 않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결국 아무런 싸움도 없이 모두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지.

[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로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The Code of Hammurabi)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학대하는 일이 없고, 가족이 없는 여자아이와 과부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편찬되었다. 또한 법전이 새겨진 비석을 왕국 곳곳에 세워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비문에는 모두 282개 조문이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 위에 “재판을 받으려는 자는 이 비 앞에 와서 그것을 읽고 들어라. 이 비는 그대들에게 법을 명백히 가르치고 그대들의 권리를 지킬 것이다. 함무라비는 나라의 주인으로서 백성들의 아버지이니라.”라고 선포되어 있다.

[다] 과거는 뒤집을 수 없으며, 진실은 영원하다. 데카르트는 신조차도 이미 저질러진 일은 돌이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더더욱 그럴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그럴 의무도 없다. 과오를 잊는다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되며, 어리석은 나머지 신중(prudence)의 미덕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나치의 죄를 잊어야 하는가? 아우슈비츠를 잊어야 하는가? 어떤 친구가 당신을 배신했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말에 매달리는 꼴이 되든지 또는 지나치게 미련한 미덕에 매달리는 결과가 된다. 스피노자는 ‘경계’하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자비와 어긋나는 말이 아니다. 전기에 의하면 스피노자는 한 광신도에게 칼을 맞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그는 그 사건과 그것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찢어진 그의 윗도리를 평생 동안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그가 용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용서란 지워 없애는 것도, 잊는 것도 아님을 시사해주고 있다. 용서는 증오를 중지하는 것이다. 용서에 대한 이 정의는 곧 자비(mercy)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자비는 원한, 이유 있는 증오, 앙심, 보복 또는 처벌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는 미덕이다.

신중이란 이로운 것과 불리한 것을 비교해서 적절한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욕망들 중에 어떤 욕망을 어떤 방법으로 충족시킬 것인가를 적절히 선택하는 신중은 ‘철학보다도 더 값진 것’이며, 바로 거기에서 ‘모든 미덕이 비롯’된다. 실천할 줄 모르다면 진리가 무슨 소용인가? 정의로운 행동을 못한다면 정의가 무슨 소용인가? 아무 소득도 없는 정의를 도대체 외칠 이유가 있는가? 단지 보여주기 위한 예의와는 달리 신중은 현실적인 삶의 지혜일뿐 아니라 삶을 즐기는 예술이다. 신중은 지속, 불안한 미래, 적절한 때(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카이로스)에 관한 미덕이며, 인내와 예측의 미덕이다. 신중은 미래에 대한 역설적이며 필연적인 성실성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지켜주고 싶은 부모님이라면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대신 살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고 아이들 자신이 장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미래의 인류에게 권리와 행복을 안겨줘야 할 오늘날의 인류는 그 점을 이해해야 할 책임이 있다.

[라] 평화(Friede)는 언어적으로 유사한 낱말들인 ‘자유로운(frei)’, ‘구혼하다(freien)’, ‘친구(Freund)’처럼 인도게르만어의 어근 ‘pri-’(사랑하다, 보호하다)에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원래는 사랑과 보호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감정적 속박과 애착의 관점보다는 상호 적극적인 도움과 후원의 관점이 훨씬 더 강조되었다. ‘평화’는 처음부터 사회적인 개념이다. 즉 그것은 인간 공동생활의 특정한 하나의 형태이다. 가령 이 말과 어원적으로 가까운 ‘자유로운(frei)’과는 반대로, ‘평화’는 그 원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평화’개념이 발달해오는 과정 중에 생긴 일체의 의미 변형 속에서도 그 원래 의미는 뚜렷하게든 희미하게든 항상 존재해 왔다. 이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평화의 이런 원(原)개념에는 나중에 더 뚜렷해지고 서로 대조를 이루게 되는 미세한 차이를 지닌 두 가지 의미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것은 평화의 상태를 ‘사랑하다’로부터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보호하다’로부터 이해해야 하는지가 차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평화’는 어떤 때는 (특히 친족 간에 지배적인 것처럼)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의 상호 결속의 상태로, 또 어떤 때는 단순한 비폭력 상태로 파악될 수 있다.

[문제 2] 제시문 [가]에서 선생님과 동구 간의 입장 차이를 제시문 [나], [다], [라]를 활용하여 논하시오. (800±80자, 40점)

[가] 선생님 제출한 과제를 검토해서 평가한 뒤 조별로 점수를 줄 거야. 그 전에……(백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조별 과제 수행 과정에서 불성실했거나 가장 기여도가 낮았다고 생각되는 조원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도록. 조별 꼴찌에게는 최하점수를 줄 테니까.……

학생들은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 학생이 손을 든다.

학생 (일어서서) 선생님! 조별과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하는 건데……누군가 한 명을 제외시킨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불공평? 이게 더 공평한 것 아닌가?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실제로 누군가 대충 게으름을 부렸고, 또 누군가는 실력이 안 되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그런데 같은 점수를 준다면 열심히 한 사람은 억울하지 않겠어? (질문한 학생을 바라본다. 그 학생은 슬며시 앉는다. 아이들의 어두운 표정.) 조직에 기여도가 낮거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퇴출되거나 낙오되는 게 이 경쟁사회의 규칙이야. 능력도 실력도 안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서 이익을 얻거나, 그 자리를 보존하려는 사람들……그런 사람들 때문에 조직이 도태되거나 뒤쳐진다면, 열심히 한 다른 사람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거잖아. 그러니 너희들 스스로가 각 조 네 명 중에서 꼴찌를 정하도록 해. 자신까지 피해를 입지 않고 싶다면 말이야. 자, 지금부터 이름을 적는다! 만약 백지를 내는 경우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 조 전체에게 최하점수를 줄 테니 그렇게 알도록!

모든 학생들은 마지못해 이름을 적는다. 자신의 이름을 종이에 쓴 동구는 자신의 짝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을 본다. 동구는 짝의 종이를 빼앗아서 짝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대신 적어 제출한다. 확인 결과 동구가 속한 조를 제외한 모든 조에서 한 명이 세 표씩을 받았음이 밝혀진다. 지목된 학생들은 절망하며 다른 조원을 원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동구가 속한 조에서는 동구가 두 표를 받았지만 동구는 개의치 않고 웃음을 짓는다.

[나] 스웨덴에서는 학교 당국이 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1) 왜 학교에 다니려고 하는가? (2) 학교에 다니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3) 너는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가?

그러고 나서 학부형들이 교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들 줄 아는가? 당신은 채소를 키우고, 옷을 만들고, 우물을 파고, 당신의 노래를 부르고, 당신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당신을 둘러싼 일상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삶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아니라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내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다] 하이에크는 경쟁을 ‘발견의 과정’으로 본다. 기업들은 자사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와 그 제품의 최저생산비용 등을 예측할 수 없다. 기업들은 수요와 비용에 관한 지식을 가격인하, 제품차별화, 서비스 강화, 기술개발 등을 통해서 발견한다. 만약 기업들이 수요와 비용에 관해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 현실의 경쟁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결과를 경쟁 없이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쟁은 필요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지식을 알 수 없으므로 경쟁을 통하여 수요와 공급에 관한 지식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희소한 자원으로 우리 인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생산자가 효율적이어야 한다. 만약 경쟁력이 없는 생산자들을 그 분야에서 도태시키지 않으면 소비자의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는다. 자유시장은 자유로운 진입과 경쟁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비효율적인 생산자는 자유경쟁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라] 예전의 연구 주제에는 집단 내에서는 타인과 협력하지만, 집단 간에는 서로 경쟁하는 협력조건을 설정한 것도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협력/경쟁 구조에 대해 협력이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이 집단 간의 경쟁 때문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변수에 대해 조사를 한 결과, 지금은 성과와 경쟁이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면 에미 페피톤은 “집단 간의 경쟁이 있든 없든 협력은 성과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집단 내 협력과 집단 간 경쟁이라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집단 간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라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최근 도이치라는 연구자는 임무의 완수에 따른 보상의 분배 방식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 방식에는 승자 독식(대부분의 콘테스트에서 그렇듯이), 성과에 비례하는 배분, 그리고 균등 배분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쟁이 성과를 높인다고 생각하므로 앞의 두 가지 분배 방식이 사람들을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탐나는 보상을 승자에게만 주면 최고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컬럼비아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여섯 가지의 실험을 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어로 된 시를 해석하는 것과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젤리의 개수를 맞추는 것과 같은 과제가 포함되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제(상호의존도가 낮은 과제)에서는 보상의 분배 방식이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모두가 균등한 보상을 받았을 때보다 성과에 비례하여 보상을 받았을 때가 더 생산적이라는 증거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의 성패가 협동에 달려 있는 경우(상호의존도가 높은 과제)에는 명백한 차이를 보였다. 이를 통해 도이치는 균등 배분 방식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고, 승자 독식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라고 결론 내렸다.